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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진보세력은 "허경영보다 못한 처지가 되었나" [신동아 기사]현실감각의 부재 핵심의제의 부제 권력의지의 부재 등 3가지로 분류
박인옥 기자  |  kgb52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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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4.17  16:4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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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진보 세력은 어째서 허경영보다 못한 처지가 되었을까.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현실 감각의 부재. 둘째, 핵심 의제의 부재. 셋째, 권력 의지의 부재.

선거 공보물을 펼쳐놓고 쭉 읽어보면 이번 재보선은 가히 ‘기본소득 선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 범 진보진영 후보들이 그렇다. 아예 정당 이름부터 ‘기본소득당’인 신지혜 후보가 눈에 띈다. 다른 후보들이라고 해서 기본소득을 이야기하지 않고 있던 게 아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지난 3월 19일부터 24일까지 이번 재보선에 출마한 후보들에게 기본소득에 대해 질의했다. 이를 보면 오태양 미래당 후보, 송명숙 진보당 후보, 신지예 무소속 후보 모두 ‘기본소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지지한다’고 답했다. 여성 의제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진보 정치 세력으로 분류될 수 있는 여성의당을 제외하면, 그 외 모든 진보 정당과 후보가 기본소득을 지지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기본소득의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앞선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의 질의에서 후보자들은 ‘기본소득을 위한 재원을 추가로 마련한다’와 ‘소득과 자산의 공정한 재분배를 위해 조세제도를 개편하고 증세를 하여 마련한다’를 택했다. 신지혜 기본소득당 후보는 한 발 더 나아가 국채 발행 및 주권화폐 발행도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답했다.

물론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국민 한 사람당 월 100만원을 기본소득으로 제공하려면, 대한민국의 인구를 5000만 명으로 잡았을 때, 매달 50조원의 재원이 마련되어야 한다. 1년이면 600조원이 필요하다. 서울시장이니 서울시민에게만 기본소득을 준다고 해도, 서울시민을 1000만 명으로 잡았을 때 매달 10조원이 필요하다. 2020 회계연도 총세입이 465조 5000억원, 총세출이 453조 8000억 원이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실로 터무니없는 숫자다. 그 어떤 증세나 국채 발행으로도 메꿀 수 없는 돈이다.

결국 용어만 다를 뿐이지 허경영의 공약과 다를 바 없는 소리다. 가령 허경영은 18세부터 국민배당금 150만원을 지급해 부익부 빈익빈을 없애겠다고 하고 있다. 게다가 허경영은 재원 마련에 대해 둘러대는 시늉이라도 한다. 자신이 서울시장 급여를 받지 않고 판공비로 쓸 것이 예상되는 100억여 원 역시 받지 않음으로써 시민들에게 돌려줄 수 있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물론 허경영을 우습게 볼 수는 없다. 허경영은 흔히 알려진 것보다 훨씬 탄탄한 조직표를 지닌 후보였다. 2020년 치러진 제21대 총선 결과를 놓고 보면 그렇다. 총선을 앞두고 그의 자금 출처 및 과거 문제 등이 제기돼 기존의 지지율을 크게 잃고 국회 입성에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비례대표 득표율은 0.7%를 기록했다. 이번 재보선에서 1.07%를 얻었다고 해서 크게 놀랄일은 아닌 것이다. 문제는 그 어떤 진보 정당도 허경영을 이길만한 득표를 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마르크스도 생산력 증대 전제
국민들이 투표장에 가서 표를 던지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결국 경제다. 부동산 분노 투표가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이번 선거의 경우는 특히 그랬다. 하지만 그 어떤 진보 정당도 우리 사회가 당면한 경제적 과제에 대해 합리적 해법을 제시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정치 세력이 반드시 갖춰야 할 최소한의 현실 감각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는 진보 정치의 핵심 의제가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통적인 좌파 경제 담론은 마르크스주의 노동가치론에 입각해 있다. 이는 생산력을 증진해 물질적 부를 키워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다. 사실상 주류 경제학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목표다. 생산력 증대를 전제로, 커지는 부를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나누고, 부의 생산수단을 노동자가 소유하자는 것이 공산주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진보 사상은 이와 같은 발전주의 세계관을 전제로 한다. 애초에 ‘진보’라는 말 자체가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은 향상된 생산력에서 나온다. 어떤 공산주의, 사회주의, 진보 이념이건, 경제 전반의 발전과 향상을 도외시한 채로는 성립할 수 없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적 세계관은 1980년대 말부터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동구권의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이 차례로 몰락한 탓이다. 역사의 목적의식과 대의를 추구하는 것은 예전과 같은 힘을 갖지 못했다. 대신 페미니즘이나 성소수자 문제 등 일상 속 차별이나 억압을 발견하고 해결하는 게 진보 정치의 중요한 의제로 부상했다.

기존의 좌파 세계관은 정체성의 정치와 동떨어진 것이었다. 노동자는 국경과 문화를 초월해 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단일 대오를 이루는 형제였다. 반면 소수자의 정체성 정치는 태생적으로 ‘다름’을 중심에 놓을 수밖에 없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진보 정당이 모두 페미니즘이나 성소수자 문제를 언급했지만 공동 전선을 구축하지 못한 이유도 여기 있다.

그 차이는 4위를 기록한 여성의당과 그 외의 진보 정당 사이에서 도드라진다. 여성의당은 오직 여성의 인권만을 의제로 삼는다. 성소수자 문제에는 우선순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 외의 진보 정당과 정치 세력은 여성의당이 갖고 있는 관점에 반대했다. 여성의당은 자신들의 입장이 페미니즘이라고 한다. 여성의당을 비판하는 기타 진보 세력 역시 페미니즘을 이야기한다. 대중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같은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하나의 뜻으로 쓰이고 있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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